배두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다”

-다카사키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어제 일본에서 돌아오셨다고 들었어요. 수상 소식이 계속 들리네요?
예. 어제 또 다섯 번째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공기인형>을 촬영할 때는 이렇게 많은 상을 받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라 제 연기가 상을 받을 만한 연기와는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배우지만 제가 느끼는 것을 친절하게 풀어 표현하기보다 내색을 너무 안 해서 관객들이 상상하게 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받는 감정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제가 좌지우지하고 싶진 않거든요. 가능하면 내 연기가 안 보이도록 누르면서, 그런 느낌으로 연기해서 수상은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이 영화가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으면 참 뿌듯하겠다 싶었는데, 제게 상을 주시니 진짜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처음엔 기뻤지만 계속 받게 되니 거짓말 같고. 내가 그렇게 잘하지 않았는데, 왜 이럴까 이상하고. 사실 제가 연기를 잘한 게 아니에요. 전 이 영화를 위해 고용된 스태프나 다름없다고 여겼고,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거든요. 현장은 철저히 감독님 영역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감독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감독님이 하고 싶으신 바를 내가 잘 전달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큰 주목을 받게 돼 부담스럽네요. 일본에서 여우주연상 다섯 개를 탔다는 것만으로 감독님들이 제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알게 되면 굉장히 곤란하잖아요.

-수상 이후 일본 감독의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진 않았나요?
그렇진 않아요. <공기인형> 끝나고 한 편 제안이 들어왔는데, 영화 제작이 무산됐다고 하더라고요.

-<공기인형>의 한국 개봉 소식을 듣고 놀라셨다면서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진짜 개봉을 안 할 줄 알았거든요.(웃음)

-개봉 안 하면 섭섭하지 않으셨을까요?
괜찮아요. 하하. 찍은 후의 문제는 제 손을 떠난 거니까. 꼭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건 없어요. 물론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당연히 좋겠죠. 그래서 열심히 홍보 활동도 하고 있고. 하지만 모든 일은 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마련이잖아요. 제가 욕심을 내든 내지 않든.

-배두나 씨는 상황에 안달복달하거나 큰 욕심이나 야망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편은 아니신가 봐요.
너무 아니죠. 너무.(웃음)

-일본 영화에 출연하는 건 야마시다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 린다 린다>(2006) 이후 두 번째예요. 야마시다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 않았나요?
음. 다르죠.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제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두 분이 비슷한 점도 있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좀 더 철학적이랄까. 그리고 확실히 더 디테일하세요. 야마시다 감독님은 촬영할 때 말씀을 아끼세요. 계속 지켜보다가 정말 자연스러울 때 촬영하시죠. 고레에다 감독님은 프리프로덕션을 하면서 이것저것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신이 이 신을 찍고 싶은 이유 같은 걸 이야기하시는데, 장면마다 영화에 대한 의도나 철학이 다 정확하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어요.

-<공기인형>에서 배두나 씨의 연기는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굉장히 섬세해요. 감독님과 언어적 차이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을 듯한데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음…. 글쎄요. 모르겠어요. 제가 촬영장에서 감독님께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한데, 꼬치꼬치 물어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마음과 마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전 고레에다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계속 눈치를 봤어요. 그 작업 자체가 섬세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죠. 이 영화를 촬영하며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계속 비우려고 했어요. 어떤 상념이나 잡념도 없애려고 노력했죠. 그냥 나는 껍데기만 있는 인형이고 그 안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비웠고 나머지는 감독님이 모두 채워 넣어주셨어요. 그러니 제가 어떤 섬세한 연기를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영화 거의 마지막, 쓰레기장에 누워 있는 신을 찍을 때는 정말 껍데기만 남은 듯했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와 자기 전까지 심장이 마구 떨리더라고요. 이제껏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게까지 흔들리고 헷갈린 적은 없었어요. 그동안 진짜 대충대충 연기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비워서 그랬었나. 섬세하다는 말씀은 굉장한 과찬인 것 같아요. 섬세한 표현보다 오히려 표현을 안 하려고 조심했거든요. 항상 전 촬영하기 전에 대본을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주욱 보고 몰입한 다음 몰입한 티가 나지 않도록 20퍼센트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마음에 100퍼센트, 200퍼센트를 꽉꽉 채운 후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듯하겠다고. 그래서 좀 어려운 작업이긴 했어요. 차라리 내지르고 폭발하는 연기가 배우에겐 더 편할 수도 있는데 계속 감추려고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좀 창피한 말인데, 현장에서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기뻐서 눈물 나고, 슬퍼서 눈물 나고, 좋아서 눈물 나고.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연기했어요.

-노조미는 인형이지만 마음이 생겨요. 선례 없는 캐릭터를 완전히 새로 창조해야 하는 그 과정이 많이 힘들고 괴로웠을 것 같아요.
많이 괴로웠어요. 하하. 근데 배우라면 다 해야 하니까. 사실 사람들은 제 노출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 그런 건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이 영화 후 드라마 <공부의 신>(KBS2)을 찍기 전까지 어떤 연기도 하기 싫을 정도였죠. 좀 무책임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진짜 싫었어요. 내가 정말 껍데기만 남은 것 같고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랄까.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큰 미련이 없는 편이라고 배두나 씨가 말하곤 했는데, <공기인형>에서는 쉽게 벗어나기가 힘드셨나 봐요.
작품이 끝나면 미련이 별로 없는데, <공기인형>은 후유증이 거의 6개월 넘게 지속됐어요. 정말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죠. 지긋지긋하고 너덜너덜한 기분.(웃음) 이전에는 촬영이 끝나면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한 편 끝냈으니 이제 다음 작품 하자 생각했고. 하고 싶은 작품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한편으로는 몸이 근질근질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내 안에 곪아 있던 고름들이 모두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뭐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감독님께 칭찬받고 스태프들에게 사랑받고 타이틀 롤 맡아 좋은 대접 받으면서 여배우로서 최고의 나날을 보냈는데 말이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현장이었는데 제가 너무 지나치게 몰입했던 거였어요. 배우라면 당연히 몰입해야지, 이런 걸 또 자랑처럼 말하고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동안 전 솔직히 너무 우스웠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 MovieWeek, 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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