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쿨한 그녀!

맑고 밝은 얼굴에 야물딱진 대답… 속이 꽉찬 20대 배우 배두나와의 즐거운 수다

예상대로 약속시간에 조금도 늦지 않고 카페에 그녀가 나타났다. 화면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본 그녀의 모습은 하얗고 눈이 커다란 암사슴 같았다. 안 그래도 그녀의 왕팬인데 너무 반해버리면 글 쓰는 데 안 좋을 것 같아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난 그녀에게 완전히 뿅가버리고 말았다. 예쁘고 매력 있는 건 둘째 치고 어쩜 그리 맑고 밝고 당당한지….

짬밥이 실력? 노!

내가 대학로에서 한참 연극을 할 때였다. 동료들 얘기가 어떤 40대 후반의 선배님께선 서른다섯살이 넘지 않은 배우한테는 아직 ‘배우’라고 할 자격이 안됐으므로 술자리에서 술도 안 따라주신다는 거다. 동년배들끼리의 자리라 “웃긴다” 했지만 사실 속으론 무지하게 기가 죽었드랬다. 안 그래도 고생 안 하고 자란 게 콤플렉스인데, 거기다 나이까지 어리니 내가 생각해도 어디 가서 배우입네 소리를 자신 있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이 먹고 나서 신인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칠 때 그 선배의 이론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배우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인생을 알아야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간접 경험이라도 많이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꼰대질’을 했었다.

헌데 이날 이십대 배우 배두나를 만나고선 그 촌스런 선입견이 깨지고 말았다. 그녀 자신도 예전의 나처럼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것이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데뷔 1년차 때 윤여정 선배를 만나면서 그 콤플렉스에서 해방되었다는 거다. 윤여정 선배 왈, “경험의 많고 적음이 연기 실력의 척도가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난 너무 많은 걸 경험해서 생각이 지저분할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선 백지 상태인 네가 나보다 훌륭한 배우일 수도 있다”라고 얘기해줬다는 거다. 그녀로부터 이 얘길 듣는 순간 난 쪽팔려서 얼굴이 벌개졌다.

그 이유는 윤여정씨의 멋진 충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내 곁에, 지금 배두나 옆의 윤여정씨처럼 멋진 선배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진짜 멋진 말은 아무한테나 먹히지 않는 법이다. 배두나처럼 그 죽이는 철학을 쑤욱 흡수할 수 있는 맑고 당당한 영혼이 그때 내겐 왜 없었을까? 멋진 말, 멋진 철학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딱 자기 수준에 맞는 충고들만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내 이십대는 ‘짬밥’이 곧 실력이라는 꼴통식 충고를 주워먹고 쭈삣거렸지만, 배두나의 이십대는 편견을 깨는 그 쿨한 철학을 주워먹고 ‘어린’ 배우인 자신을 쭈삣거림이 아닌 자긍심으로 지켜낼 수 있었던 거다. 역시 그녀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처럼 자유로웠다.

연극을 하려고 꽤 애를 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연극 연출가 박근형씨와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헌데 드라마 촬영이라는 게 천천히 느끼고 천천히 찍는 영화판에만 있었던 배우에겐 영혼을 다칠 수 있는 작업인지라, <위풍당당 그녀>를 막 끝낸 그녀는 진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극은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시기를 조금 뒤로 밀어뒀다 한다. 그러면서 연극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다고 힘주어 말한다.

연기를 잘 뽑아내기로 유명한 아무개 감독과는 한번도 작업한 적이 없기에 그 사람과 작업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가 참 야물딱진 대답을 들었다. 자기가 듣기로는 그 감독은 배우가 화를 내야 하는 장면이면 그 역할이 왜 화를 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보다 그 배우가 정말 화가 나도록 만든 후에 카메라를 돌린다고 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무리 작품이 좋더라도 프로배우를 프로대접 하지 않는 감독과는 일하기 싫다는 거다.

요구르트 회사로부터 항의당한 사연

내가 영화인들을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 게 있다. 왜 배우들과 토론을 하지 않느냐 하는 거다. 작품분석은 연출부들과 할 뿐, 배우들 특히 젊은 여배우들과는 그냥 간단한 상황 얘기만 하기 일쑤이다. 그들의 변명은 이랬다. “대화가 되는 젊은 여배우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테이블 리딩을 꺼리는 배우들 투성인데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한국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젊은 여배우들의 인형 같은 연기가 영화 전체의 질을 깎아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배두나 같은 여배우는 정말 금쪽 같은 배우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장면은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절대로 찍지 못한다고 한다.

그녀는 또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최근 한 영화에서 자신의 장면이 대폭 잘려 나갔다고 감독한테 항의를 한 배우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영화가 잘 나오는 게 중요하지 자기가 많이 나오는 게 중요하냐며 그런 배우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펄쩍 뛰는 거다. 자신도 한 장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연기하지만, 결국 영화는 감독 예술인데 자기 얼굴 많이 안 나왔다고 섭섭해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는 거다(배우가 이런 생각을 하기란 정말 힘들다는 건 배우라면 다 알 거다).



그녀가 스물다섯 나이에 이미 이렇듯 속이 꽉 찬 배우가 된 데에는 대학로 중견배우이자 그녀의 어머니인 김화영씨의 몫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딸을 배우로 키우기 위해 ‘치마’로 ‘바람’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 수준은 딸래미 손을 끌고 성형외과부터 가는 다른 여배우 엄마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야물딱지고 성숙하고 매력 있는 여배우를 20여년간의 장기기획으로 키워낸 그녀의 어머니에게 한국 영화계에서 감사패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녀를 보는 내내 괜히 고마운 느낌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호주제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폐지돼야 하는 거라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위풍당당 그녀> 촬영 중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며 인터뷰 중 유일하게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그녀의 극중 역할은 요구르트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미혼모였다. 요구르트 가방을 메고 가던 중 넘어지면서 요구르트들이 땅에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는데, 특정 회사에서 나오는 요구르트 이름이 고유명사인 줄 몰랐던 그녀는 땅에 구르는 요구르트 병들을 보며 “악! 내 OOOO~” 하고 절규를 했다는 거다. 그 뒤 그 요구르트 회사에서 방송사를 상대로 항의 전화가 왔는데,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자기네 회사에선 미혼모를 절대 안 뽑는다면서 명예훼손이라는 거였다. 아! 정말 화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요구르트 회사를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났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 회사를 욕하는 그녀는 정말 예뻐보였다.

고삐리 때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를 보고 ‘죽인다’ 했다기에 앞으로 상업영화로 뜨긴 글렀다고 놀렸더니 깔깔깔 웃는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니까 스태프들이 배두나랑 일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단다.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랑 단 두시간 수다를 떨고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글 . 오지혜(배우) | 사진 . 정용일
© 한겨례 21 .. 2003년07월23일 제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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